인간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
앞에서는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의 유사 개체를 만들어 내는 생 명의 정보인 DNA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DNA 정보의 총합인 게놈(genome)에 대해 공부해 보고자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나나를 바나나로, 즉 다양한 생물체 각각을 만들 수 있는 유전정보 전체를 우리는 그 생물체의 유전체, 즉 게놈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을 구성 하고 있는 수십조 개의 세포 각각에 유전체 정보가 담겨 있다. 인간 유전체를 해독한다는 것은 인간 DNA 전체의 A, T, G. C 네 종류 염기의 개수와 그 순서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인간 유전체의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작업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1990년부터 13년간 진행되었고, 2003년에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다. 이 작업에 총 30억 달러 (한국 돈으로 3조 원)의 막 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 작업은 미국의 에너지성 (Department of Energy) 과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 의해 주도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시작 당시 이 프로젝트에 투여될 막대한 예산을 당장 인간에 게 유용한 AIDS 등의 질병 연구에 먼저 이용해야 한다는 많은 학자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미국 정부와 유전체 정보가 궁극적으로 유전병의 치료에 꼭 필요하다는 일부 과학자의 주도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진행되었다.
이 거대 프로젝트는 국민의 세금인 연구비가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사용되어야 하고, 연구주제는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의 연구비 배분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 등이 참여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거대 과학 프로젝트가 계속 성공을 거두면서 과학 연구의 거대 과학화와 과학의 정치에 대한 예속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각 나라들은 앞다투어 막대한 비용, 엄청난 물리적 자원, 인력, 기술력이 투입되는 방향으로 생명과학 연구 방향을 수정하여 생명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과학 연구의 목적이 아닌 거대 프로젝트 위주로 과학연구를 진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이토록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인간 유전체사업은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 일본 등의 협력을 통해 진행되었다) 인간 유전체의 정보를 해독하고자 한 것일까? 어렸을 때 플라스틱 부품과 순차도(圖) 를 주고 비행기나 탱크 등을 조립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이 있을 것 이다. 간단한 장난감을 조립하기 위해서도 부품의 리스트가 필요하듯 보잉 747 같은 매우 복잡한 기계가 어떻게 조립되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부품 리스트를 확보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한 인간 이라는 유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먼저 그 부품 리스트가 필요하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이제 생명체의 부품 리스트를 얻어낸 것이다. 이 부품 리스트를 이용하여 앞으로 어떻게 이들이 조립되어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고 유지하는지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막대 한 연구비를 지원하여 그 비밀을 풀고자 했다. 또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유전체 정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믿음 속에 진행되었고 그 귀중한 정 보가 인류인 우리 모두에게 무료로 공개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결과 사람의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그 정보의 양을 이해하기 쉽게 환산해 보면 여백 없이 A, T, G, C 글자로 가득 채운 A4 용지를 90미터 이상 쌓아 올리는 정도의 정보량이다. 인간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인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각 단백질에 대한 정보인 유전자의 수가 예상보다 엄청 적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유전자는 적어도 10만 개는 넘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간은 고작 2만 5000천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놀라움은 인간과 다른 생 물체의 유전자수를 비교하면서 더욱 커졌다. 매우 고등한 동물이라 자부하 는 인간은 맥주나 빵을 만들 때 넣는 효모보다 겨우 5배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과일 주변을 날아다니는 초파리의 2배 그리고 아주 작은 지렁이(꼬마선충)보다는 겨우 1.5배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