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유전자 정보 공개는 사회적 차별화가 현실화 된다
현재 유전체 정보를 상업적 목적에 이용하는 몇몇 회사들은 DNA 스캔’ 이라는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DNA 스캔’은 개인의 유전체로부터 변형되 어 있는 유전자들을 모두 찾아내 질병의 가능성을 예측해 주는 서비스이다. 이런 회사들은 개인의 유전자검사를 통해 ‘어떤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니 어 떤 질병을 조심하라’,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은 몇 %이다’ 등등의 검사결 과를 제시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 유전체 정보 를 바탕으로 머리가 아플 때 타이레놀을 먹는 것같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유전정보에 따라 가장 적합한 약을 찾 아 처방하는 ‘맞춤형 의료’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TV 범죄 수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개개인은 모두 조금씩 다른 DNA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전정보는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도 유용 하게 이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예가 오래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 이야기이다. 1950년대에 볼셰비키 혁명으로 총살된 러시아 황실 가족 중 가장 어린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며 ‘아나스타샤’를 자처하던 여인이 나타났고, 그 진위에 대한 국제적 논란이 있었다. 후에 그녀의 신원이 사후 병원에 남겨져 있던 조직에 서 추출된 DNA 정보로부터 가짜로 판명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신용정보 유출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사회구성원 모두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용정보가 아니라 개개인의 유전정보가 데이터화되고 유출된다면 그보다 더 엄청난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 의료보험이나 생명보험이 현재는 나이에 따라 가입자를 차별하고 있지만 병에 걸릴 가능성을 유전정보로부터 예측할 수 있다면 이를 근거로 가입자를 차별하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도 개인의 유전정보에 따른 질병 유발 가능성으로 개개인의 차별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집안이나 경제력뿐 아니라 그 유전자 때문에 부모가 결혼을 극심히 반대하는 일이 일반화될 수 있다.
아마도 결혼정보업체에서는 유전자를 근간으로 ‘귀골’이 아니라 ‘귀 DNA’ 그룹을 선별하고자 할 것이다. 즉, 사회에서 유전 정보에 근간을 둔 인간의 차별이 가능해질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중요한 프라이버시로서 혈액 등 생체 샘플에 대한 관리 및 그로부터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유전정보에 대한 관리와 사용에 대한 법적 장치 등의 마련이 매우 필요 해질 것이다.
개인 유전체 정보 해독 100만원 시대의 도래와 그 의미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피 한 방울을 뽑아 유전정보를 읽어낸 후 부모에게 아이가 앞으로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과 신체적 능력에 대해 설 명한다. 1997년 발표된 생명과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앤드루 니콜 감독의 명작 <가타카>의 한 장면이다. 수업시간에 이 영화를 보고 학생들에게 ‘본인 이나 자식의 유전정보에 대해 알고 싶은가?’를 주제로 토론을 하게 했다. 학생들은 알고 싶은 쪽과 알고 싶지 않은 쪽이 반반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해독 기술은 곧 이런 토론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인 유전체 정보를 단 하루 100만 원에 해독 하는 시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병원에서 X-ray를 찍는 것처럼 개인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게 될 것이다.
네 종류 염기인 A, T, G, C 서열이 이중나선구조로 쌍을 이루고 있는 인간 유전체 DNA를 읽어내 유전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된 것은 DNA 시퀀싱 (sequencing)이라는 염기서열 해독 기술 덕분이다. DNA 시퀀싱은 1977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교수 길버트 박사와 그의 학생 맥삼에 의해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생어 박사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다. 맥삼-길버트의 방 법은 네 종류의 염기 각각에 특이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잘리게 한 후 그 자리를 읽어내는 화학적 접근이었다. 생어 방식은 DNA 이중나선을 복제할 때 특정 염기에서 더 이상 복제가 일어나지 않고 끝나게 하여 끝 부분을 비교해 읽어내는 것이었다. 길버트와 생어 박사는 이 공로로 1980년 노벨화학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생어 방법이 더 효율적이어서 이후 DNA 염기서열 해독은 주로 생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DNA 염기서열 해독이 가능해지자 인간 유전체인 30억 염기쌍의 서열을 읽고 해석하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1990년에 미국 에너지성과 국립보건연구소를 중심으로 발족되었다. 인간 유전체 정보는 의학 및 생물학의 발달을 가져오고 암이나 알츠하이머병 등 유전자이상에 의한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2000년 인간 유전체 지도의 초안이 완성되어 6월 26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수상에 의해 발표되는 역사적인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인류는 오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를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정확도를 높이는 보완작업이 수행 되어 2003년 완성된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이 인류에게 공개되었다. 이 정보에는 인간 유전체 99%의 염기서열이 99.99%의 정확도로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었다.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도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또한 2008년 미국, 영국, 중국이 중심이 되어 1000 유전체 프로젝트(1000 genomes project)가 발족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 두명의 유전체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다양한 종족 1000명 이상의 유전체를 빠른 속도로 읽어내는 것이다. 인간마다 존재하는 1% 미만의 미세한 유전적 차이 중 질환과 관련된 차이를 발견하고 의학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 2010년 1000명 유전체 초안이 발표되었고 2012년 3월 인터넷 사이트 아마존(http://aws.amazon.com/1000genomes)을 통해 이 정보가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현재는 세계 27개 인종 2500명의 유전체 정보를 읽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빨리 여러 명의 유전정보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은 2007년 차세대 유전체 해독기술인 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가 개발된 덕분이다. 1세대라 불리는 생어 염기서열 기술은 정확도는 높지만 대규모 시퀀싱이 불 가능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일루미나(Illumina)사에 의해 처음 개발된 2세대 NGS는 대량 병렬염기해독기술을 사용하여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는 유전체의 양이 매우 크고 시간을 엄청 단축시켰다. 2011년 10월 기준 인간 유전체를 읽는 데 800만 원이 들었고, 2014년에는 100만원으로 하루 만에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2012년 1월 라이프 사이언스 사는 개인 유전체를 100만 원으로 하루에 읽어낼 수 있는 사무실 프린터기 크기의 이온 프로톤 염기서열 해독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3세대, 4세대 염기서열 해독기가 개발되고 있어 그 비용과 시간은 앞으로 더 빠른 속 도로 감축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 서비스의 혁신적 변화가 예측되고 있다. 개인의 유전정보 에 따라 미리 취약한 질병에 대한 예방과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찾는 유전자 맞춤형 치료가 곧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에 수반되는 개인 유전체 정보 프라이버시와 차별 문제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